본문 바로가기
Book Review

불평등을 감수하지 않는 법

by Sinclair R. 2020. 4. 6.

1962년 미국 남부 앨라배마주 버밍햄의 크리스마스 전야, 어느 호텔에서는 세계적인 명성으로 미국 전역에서 콘서트 요청을 받은 천재 피아니스트의 저녁 공연을 기다리는 사람들로 붐볐다. 그날의 주인공인 돈 셜리는 세련된 턱시도를 갖추어 입고, 공연 시작 전 자신의 연주를 보러 찾아온 사람들과 함께 저녁 만찬을 즐기기 위해 호텔 레스토랑으로 내려왔다. 하지만 그를 반겨주기는커녕, 호텔 지배인이 그를 막아서 식사를 할 수 없다고 제지한다. “저희 호텔에서는, 규정 상 흑인은 식사를 할 수 없습니다.” 호텔에 마련된 모든 것들이 돈 셜리 피아니스트를 위한 것처럼 보였지만, 단지 피부색이 다르다는 이유로, 그의 배고픔마저 해결해 줄 수 없었다. 이러한 상황이 현재 우리 생활 속에 닥친다면, 대단히 가혹하고, 답답하고 혐오스러운 부정의한 상황이겠지만, 1960년대 미국 사회에서 흑인에 대한 차별대우는 지극히 자연스럽고 습관적인 행동 양상이었다. 

영화<Green Book, 2018>의 한 장면

1964년 린든 존슨 미국 대통령이 시민권법(Civil Right Act of 1964)에 서명을 하면서 처음으로 법적으로 흑인은 완전한 평등을 얻게 되었지만, 아직까지도 만연히 백인우월주의사상이 남아있는 곳도 있으며, 인종 간 차별대우는 잔존하고 있다. 이는 미국 상위계층의 주축을 WASP(White, Anglo-Saxon, Protestant) 백인, 앵글로색슨계, 개신교도로 지칭하면서 인종 간 차별대우가 소득의 불평등의 연장선으로 작용한다.


그렇다면, 이러한 불평등은 자연스러운 것일까? 왜 우리는 이러한 불평등을 감수하고 살아가는 것일까?

폴란드 출신의 사회학자 지그문트 바우만의 저서 「왜 우리는 불평등을 감수하는가?」에서는 아래와 같이 말한다.

사회 불평등은 소비주의문화로 인해 더 강해지고 있으며, 대부분 사람들은 “부정의의 교의들에 대한 믿음” 때문에 불평등에 대해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 것

“부정의의 교의”는 근본적으로 고찰되거나 명백한 증거가 없이, 타당한 것이라고 받아들여지는 암묵적인 전제이다. 예를 들면, “경제성장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매년 경제성장 수치에 따라 국가의 리더가 일을 잘하니 못하니 왈가왈부하는 세상 속에서, 경제만 살리면 모든 문제들이 해결될 것만 같은 환상에 젖어있다. 정작 국가 경제성장률은 높게 치솟아도, 지역 자영업자와 중소기업가들의 상황은 좀처럼 나아지지 않는데도, 경제성장이 모든 것을 해결해준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러한 전제들은 근거없이, 우리들 마음속에 깊이 무비판적으로 수용되어왔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생활방식과 그 지침이 되는 가치를 근본적으로 고찰하고 수정할 필요가 있다. 그리하여 올바른 선택을 하면 불평등을 바로 잡을 수 있을 것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하지만, 이미 우리는 불평등에 구조화된 사회를 살아가고 있다. 올바른 선택을 한다면 시간, 노력, 희생을 더 많이 요구를 하고 사람들의 비난을 살 수밖에 없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사람들은 자의적으로 올바른 선택보다는 불평등을 받아들이고 편리한 선택을 하게 된다. 저자는 이러한 논리로 불평등 앞에서 무력한 우리모습을 보여준다.


앞서 말했던, 흑인 피아니스트 돈 셜리는, 미국 남부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흑인에 대한 인식을 그의 연주를 통해 변화시킬 수 있다고 굳게 믿었다. 남부에 가면 흑인에 대한 차별이 심할 것을 우려하는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그는 일부로 남쪽 주에서 몇 차례 콘서트를 열었다. 그는 이미 명예와 충분한 부를 누리며 편리하게 살 수 있었지만, 흑인차별 및 불평등에 대한 인식을 깨트리고자 하였다.

돈 셜리처럼, 불평등에 대한 무력함을 깨고 싶다면 우리에게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 선택에 대한 시간, 노력, 희생이 요구를 견뎌낸다면 바뀔 수 있다.

**그린북(2018)과 지그문트 바우먼의 저서를 읽고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