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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Review

유럽문화를 형성한 힘의 원동력

by Sinclair R. 2020. 5. 31.

 

출처: pixabay

내가 책을 읽는 습관이 생기게 된 큰 계기는, 기차를 자주 타고 다니게 되면서부터였다. 대학교가 고향과 그리 멀지 않은 타 지역에 있었기 때문에 주말마다 기차를 타고 집에 들르게 되었는데, 대략 40분이라는 시간을 잘 활용하고 싶었다. 기차는 나에게 책과 데이트를 할 수 있게 다리를 연결해주었지. 반복적인 패턴으로 덜커덩거리는 철도를 달리면서, 책을 읽는 것은 나에게 소중한 시간이되었다. 가방에 책이 들어있지 않은 날은,  역사 내에 있는 편의점에서 판매하는 베스트셀러 책을 자연스럽게 사서 읽었다. (편의점에 좀 좋은 책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아쉬워했던 적이 많다)

기차를 타게 된 환경 덕분에, 20살에 내 인생의 "Reading books in a train"문화가 시작되었다. 한 번은 어떤 행선지가 목적이 아니라, 기차에서 책을 읽기 위해서 기차를 타기도 했다. 이렇듯 나는 기차를 너무나 좋아한다. 주 2회 이상 기차를 타는 것은 기본이고, 아무 고민 없이 어떤 지역을 향해 떠나기도 한다. 기차는 내 인생에 큰 의미를 가져다준 수단이다.


기차가 내 생활에 영향을 끼쳤던 것 처럼, 철도의 도래가 유럽의 역사에 문화적, 경제적 파급력을 불어넣었는 사실을

<유러피언>, 올랜도 파이시스를 읽으면서 알게되었다.

 

 

900페이지.........유러피언 친구가 베고 자는 베개냐고 물었지만, 유럽으로 여행하는 꿈을 꿀 수 있는 옴팡지게 재밌는 책이다.

대략 900페이지 분량의 두께이지만, 1843년 유럽 국가를 연결하는 철도가 오페라, 예술, 문학 그리고 현대의 엔터테인먼트의 시초와 같이 비즈니스 관점에서도 어떻게 형성되었는지 서술하고 있다. 유럽 네트워크 형성에 큰 맥을 잡고 있는 이야기를 3명의 주요 인물 축(루이 비아르도, 폴린 비아르도, 투르게네프)을 중심으로 전개하고 있어서, 1) 인물 간의 관계 2) 비즈니스적 관점 3) 그 시대의 문화적 관점 등 여러 가지 주제로 읽을 수 있었다.  (음... 진짜 재밌다. 역사책이라고 딱딱한 역사책은 절대 아니다.)

폴린 비아르도, 세페의 그림

방대한 양의 내용을 한 편의 서평으로 표현하기 매우 아쉽지만, 크게 3가지 내용으로 1) 문학과 작가의 힘, 2) 사랑의 힘(feat. 진정한 덕후), 3) 돈과 예술의 관계로 요약을 해보았다.

#문학과 작가의 힘

이 책을 읽으면서, 책이 사람들에게 주는 영향력을 다시 한번 더 깨닫게 되었다. 대표적으로 투르네게프의 <사냥꾼의 수기>가 러시아 농도제 폐지에 엄청난 영향력을 행사한 일이다. <사냥꾼의 수기>는 러시아의 전원생활과 농노 제도의 현실 삶을 리얼리틱 하게 묘사하여, 부조리한 삶을 고발하고 있는 작품이다. 투르네게프는 러시아에서 농노를 거느리고 있는 지주의 아들로서, 이러한 작품을 썼다는 데 큰 의미를 가진다. 

투르게네프는 "부유한 사람으로 널리 알려져 있으므로" 그가 그 책을 쓴 동기는 정치적이었다. '농민들이 압박을 받고 있고, 지주가 부도덕하면서도 불법적인 행동을 하고 있으며, 사제들은 지주들에게 굽신거리며, 현지 관리들은 뇌물을 받는다. 결론적으로 농민들이 자유롭게 되면 지금보다 삶이 더 나아질 것을 보여주기 위해 그 책을 썼다.p290
두 명의 농부가 오렐에서 기차를 타고 모스크바로 올라와 자기를 찾아와서 러시아 식으로 머리가 땅에 닿을 정도로 깊은 절을 했던 것이다. 그들이 그렇게 한 것은 '온 농민의 이름으로 그에게 감사하기 위해서'였다. p.291

지주의 아들이지만, 농노 제도에 대해서 회의적인 태도를 가지고 고발을 한 투르네게프의 생각이 참으로 멋있었다. 그 시대에 다른 여러 나라를 여행을 하면서, 투르네게프는 다른 문화들을 접하면서 러시아와 다른 나라의 차이점을 더 자세히 관찰할 수 있었을 것이다. 지주의 아들이지만, 농노의 삶에 공감하고 변화와 개혁을 일으킬 수 있도록 글을 썼다는 사실에 감동하였다.  또한, 그의 글을 농노들도 읽고 개혁을 이끌 수 있게 된 배경은 철도와 기계적인 복제술의 발달로 여러 판의 책이 인쇄될 수 있었던 시대적인 영향이 뒷받침되었기 때문이다. 

#사랑의 힘(feat. 투르네게프는 진정한 덕후... 빠순이?)

이 책의 중심인물은 3명. 루이 부부(루이 비아르도, 폴린 비아르도)와 투르게네프이다.  투르게네프는 글의 시작부터 끝까지 폴린 비아르도의 열렬한 덕후이다. 그녀를 영원토록 사랑하였다. 폴린 비아르도는 오페라를 부르는 성악가인데, 그녀의 목소리를 듣고 추종하는 남성들이 몇몇 있었지만, 투르게네프처럼 그녀를 영원히 따라다니고 사랑한 남자는 없었던 것 같다. 이 글 전반적으로 투르게네프가 폴린에게 헌신하는 내용들이 참으로 한심하면서도, 애틋하고, 끝내 대단하다고 손뼉 칠 수밖에 없다.(당신이 진정한 승리자이다)

사실 어떻게 보면, 루이 부부 사이를 위협하는 불륜의 관계이지만. 폴린이 결혼을 하게 된 배경을 본다면 루이 비아르도와 사랑을 전제로 결혼을 한 게 아니었기 때문에, 폴린과 투르게네프의 관계가 납득이 간다. 그런 관계를 모르고 있진 않을 테지만, 묵묵히 폴린을 지원해주는 루이 비아르도도 멋있고, 폴린과 투르게네프가 예술적 공감대를 이루고 서로에게 시너지를 주는 관계 또한 응원할 수밖에 없었다. 나중에 이 세 명의 관계가 삼각구도처럼 한 가족으로 지내는 이야기를 읽으면서 경이로웠다. (대단해.)

#돈과 예술의 관계(feat. 폴린 vs. 조르주 상드)

예술가마다 자신의 작품, 소질의 가치를 매기는 기준은 다르다. 자신의 가치를 돈으로 매겨버리면, 가치를 환산할 수 없기 때문에 상업적이라는 지적을 받기도 한다. 나 또한 가끔씩 디자인 작업을 하는데, 나의 창작물에 대해서 가격을 책정하기란 너무 어려운 문제다. 높은 금액을 요구하기엔 너무 속물 같아 보이지만, 세상에 하나뿐인 창작물인데 "돈"으로 매겨지는 것에 대해 뭔가 모를 허탈함과 상실감이 오기 때문이다. 이러한 고민을 내가 하고 있을 때쯤, 유러피언의 폴린이 자신의 노래에 대한 돈을 요구하는 태도를 보면서 생각을 좀 더 확장하게 되었다.

폴린은 그녀의 가치를 돈으로 아주 잘 매겼다. 심지어 장례식장에서도 노래를 부를 때 엄청난 금액의 돈을 요구하기도 하였으니까. 이러한 그녀를 보며 그녀의 절친한 지인인 작가 조르주 상드는 그녀가 상업적이라고 비난하였다. 하지만 폴린은 자신의 가치는 한정적이며 전성기를 꽃피울 때 높은 금액으로 돈을 벌기 위해 노력하였다. 

그뿐만이 아니라, 후반부에 다른 문학 작가들과 화가들 이야기도 나온다. 예술가들은 예술을 하기 위해서 돈이 필요하지만, 돈을 위해 작품을 창작하는 경우를 부끄러워하는 경향을 읽을 수 있었다. 그 부분에서 나 또한 공감하였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예술가들(자신의 힘으로 돈을 벌어 대중들이 원하는 상업적인 주제를 그려 돈을 버는)도 있었다. 그래서 돈과 예술의 관계에 대해서도 어떻게 그 창작물에 대해 가치를 매기는가? 에 고민을 하게 되었고, 폴린의 태도에 한껏 동의를 하게 되었다.


주인공들 뿐만이 아니라, 19세기에 활동을 하였던 예술가들에 대한 이야기도 나온다. 사실 방대한 내용을 다 담을 수 없어 매우 아쉽다.  책의 내용 구절구절, 서술되어 있는 그림을 찾아보며, 그리고 오페라의 여러 곡들을 찾아 들으면서 오감으로 읽은 책이다. 정말 이 방대한 내용을 저자는 어떻게 쓸 수 있었을까? 감탄을 하면서도 이 내용들을 요리조리 재미있게 서술하여 매우 감사하다. 덕분에 유럽의 문화 속을 여행할 수 있었고, 기회가 된다면 그 철도를 타고 하나하나 차근차근 탐방하고 싶다. 특별히 역사 내에 있는 서점을 다 들려보고 싶다(코로나가 끝난 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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